▲ 경유차들이 서있는 모습.
[투데이에너지 이종수 기자] “미세먼지의 주범이 경유차라고 하던데. 그러면 경유차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죄인인가?”

경유차를 오랫동안 몰아온 기자의 친구가 한 말이다.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30년까지 개인 경유승용차를 퇴출시킬 것이라는 공약을 내놓았다. 경유에 붙는 유류세 인상도 점쳐지고 있다. 미세먼지를 잡는 데 경유차가 희생양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유차 억제 정책이 과연 실효성을 발휘할 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고 있는 격’이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본지는 경유차 억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전문가 의견 등을 토대로 다각적으로 분석해봤다.

경유차 억제에 집중된 미세먼지 대책
지난해 미세먼지가 한창 하늘을 뒤덮던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에 정부는 부랴부랴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은 크게 수송부문(29%), 발전·산업부문(55%)의 미세먼지를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수송부문에선 경유차 질소산화물 실도로 검사기준 도입,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사업 확대, 수송용 에너지상대가격 조정방안 검토 등 경유차 규제 강화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경유차 규제 강화와 함께 전기차 등 친환경차 보급을 대폭 확대한다. 특히 전기차는 당초 2020년까지의 보급 목표(누적) 20만대에서 25만대로 늘려 잡았다.

일단 수송용 에너지상대가격 조정방안 연구용역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현행 수송용 에너지가격 비율인 100(휘발유):85(경유):50(LPG)이 어떻게 조정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정부가 경유 세율을 올려 경유 값을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관련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중한 검토를 주문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경유 소비자 가격의 50% 이상이 세금인 상황에서 경유에 대한 세금 인상을 통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접근한다면 국민의 부담만 늘어나면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라며 “미세먼지 배출 원인은 다양한 데 경유차 소유주에게만 부담을 집중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경유는 자영업자, 화물차가 이용하는 서민 필수 연료이기 때문에 세율 인상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유 화물차 중 운송영업용 대형 화물차는 정부로부터 유가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소형 트럭과 승합차 등 나머지는 유가보조금을 받지 않고 있다. 대형 화물차들은 전체 경유차 미세먼지의 70%를 배출하고 있는 데 경유 값이 오르면 이들은 유가보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개인 승용차와 소형트럭 등은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경유 값이 올라도 당장 경유차가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어 미세먼지를 잡는 정책 수단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에너지상대가격 조정방안 연구용역의 신뢰성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연구용역 내용에는 경유차보다 휘발유차와 LPG차의 미세먼지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휘발유차와 LPG차의 미세먼지 배출계수는 아예 0으로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초 경유차 범주에 미세먼지 배출이 많은 건설기계까지 포함시켰지만 이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문제제기로 제외하는 대신 경유차의 실 도로 운행 시 미세먼지 배출량을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경유차의 미세먼지 배출계수를 더 많이 나오게 해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용역에서 에너지상대가격 비율이 100:126:70 정도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용역안과 OECD의 에너지상대가격 비율(100:90:50)의 중간선에서 에너지상대가격 비율이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동차가 1km를 달릴 때 나오는 미세먼지는 경유 0.0021g, LPG 0.0020g, 휘발유 0.0018g으로 큰 차이가 없다.

환경부의 미세먼지 분석 방법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은 지난 3월29일 개최한 ‘발전부문 미세먼지 저감 및 에너지믹스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3차 정책토론회에서 “지난 1, 2차 정책토론회에서는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미세먼지 종합대책 전문가 평가를 통해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진단이 미비했다는 점과 수송부문에서도 모든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종수 서울대학교 교수도 “휘발유와 LPG도 미세먼지가 배출되는 데 환경부의 통계에서는 휘발유와 LPG의 미세먼지를 0으로 잡고 있는 등 미세먼지 배출량 통계의 신뢰성 문제가 지속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수 창원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는 “경유차의 배출 미세먼지보다 타이어마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가 20배나 더 많다는 환경부 산하기관의 연구결과가 있으면서도 미세먼지 대책에는 언급도 하지 않고 오직 경유차 억제에만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유차 대신 휘발유·LPG차 늘어나도 걱정

▲ 경유차에 주유하는 모습.
일단 경유 가격이 오르면 경유차 구매 수요가 어느 정도는 휘발유차와 LPG차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가 LPG연료사용제한 완화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어서 LPG차의 증가가 점쳐진다. 하지만 휘발유차와 LPG차는 경유차보다 미세먼지는 적지만 연비가 낮아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 세계적인 추세인 온실가스 감축에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온기운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경유에 대한 세금을 무겁게 매길 경우 미세먼지 저감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경유차에서 휘발유차로의 연료전환이 일어날 경우 온실가스 감축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LPG협회의 통계자료인 ‘Statistical Review of Global LPG 2016’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LPG차는 감소세다. LPG차의 낮은 연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해 온실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협회의 ‘한국의 자동차산업’(2016년 6월)에 따르면 전 세계 LPG차 점유율은 2.1%에 불과해 65.3%를 수출하는 국내 자동차회사들의 LPG차 개발 투자를 유인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LPG차가 늘어날 경우 에너지수급 차원에서도 문제가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LPG 수입이 71%를 차지하고 나머지 29%는 국내에서 생산·공급되고 있다. LPG차가 증가하면 국내의 경쟁력 있는 석유제품 생산능력을 보유하고도 추가로 수송용 LPG를 수입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교수는 “우리나라는 석유제품이 남아돌아 5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반면 LPG는 모자라서 해외에서 수입하는 산업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라며 “LPG 수입이 많아지면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균형 잡힌 에너지 수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일반인이 구매할 수 있는 LPG차는 대부분 승용차로 경유차 중 가장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대형화물차를 대체하기도 힘들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의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2016년 10월)에 따르면 경유차 중 화물·특수차량의 미세먼지 배출 기여율이 70% 이상이다. 경유차로 범위를 좁히면 경유승용차의 PM10 및 NOX 배출량은 0.8%에 불과하다. 대형화물차 1대가 배출하는 PM10 및 NOX 배출량은 각각 경유승용차의 145.25배, 260.64배에 이른다.

노후 경유차 저공해화 지원 확대 필요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에서 노후 경유차 저공해화보다는 전기차 보급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전국적으로 5만5,000여대의 노후 경유차가 폐차됐지만 대부분의 지자체 지원금이 부족해 지원금을 받으려고 노후 경유차 폐차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는 “경유차 중 노후 경유차가 경유차 총 미세먼지 배출량의 79%를 차지한다”라며 “미세먼지 저감에 효율적인 노후 경유차 저공해화 대책에 대한 예산을 더욱 확대하고 전기차는 중장기적으로 신기후체제 대응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기차 보급 확대는 미세먼지 저감 효과 없이 석탄화력발전 증가로 이어지는 풍선효과를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현재와 같이 석탄발전량이 가장 많은 우리나라의 전원 믹스 상황에서 전기차는 미세먼지 저감에 효율적이지 못한 수단으로 전기차 보급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며 “타이어와 도로의 마찰, 제동에 따른 브레이크 마모, 도로 주변에 내려앉아 있던 미세먼지의 재비산 등 비 배출가스 미세먼지는 배터리 무게로 인해 내연기관 차량보다 평균 24% 무거운 전기차가 더 많이 배출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2030년까지 개인 경유승용차 퇴출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 또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조영탁 한밭대학교 교수는 “2030년까지 개인 경유승용차를 퇴출하려면 2020년경부터 신차 판매를 중단해야 하는데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운행 중이던 경유승용차를 폐차시키는 것도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는 등 신규 판매시장과 중고차시장에 큰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경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경유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인체 발암물질로 분류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휘발유나 LPG, LNG자동차의 배기가스는 인체에 안전한 것도 아니다”라며 “정유사에서 생산하는 석유제품 중 30%를 차지하고 생산량의 53%를  수출하고 있는 경유를 포기해버리고 LPG와 LNG를 추가로 수입하겠다는 정책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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