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이야기

LNG선을 포함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배들에도 재미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가령 배는 남성명사가 아니라 여성명사라는 점에서부터 배의 이름을 짓는 것, 배는 똑바로 가지 못한다, 배의 나이, 배의 크기를 정하는 법 등이 그것이다.

이에 현재 LNG 수송을 담당하고 있는 4개 운항선사에서 운항중인 배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도서출판 지구촌’에서 발간한 ‘배 이야기’중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배가 남성이 아니고 여성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불어나 독일어 등 일반명사에 성(性)을 붙이는 언어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배를 여성명사로 부른다.

이처럼 거대한 덩치에, 그것도 대부분 쇳덩어리도 만들어지는 배가 여성으로 불리는 것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오대양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는 남성미 넘치는 배가 여성에 비유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이유에는 제일 먼저 배의 생명인 곡선미이다.

배는 얼마나 곡선이 잘 나오느냐에 따라 배의 성능이 좌우되는 것이다.

배의 앞부분은 파도와 직접 부딪히는 곳이어서 저항을 줄이기 위한 특수한 곡선 설계를 한다. 배의 몸체도 앞에서 뒤까지 유연한 곡선을 이뤄야 한다.

이는 여성들이 곡선의 몸매를 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된다.

또 한가지 이유는 배와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화장이 진해지며 둘 다 온몸을 장식하는데 많은 노력을 한다.

한때는 기초화장만 해도 폼이 나지만 나이가 들면 도장을 두텁게 해야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배를 여자로 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둘다 만들기(만나기) 보다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 정열이 필요하며 지속적인 관심으로 슬어주고, 닦아주고, 기름치고, 조이고, 덧칠하는 애정이 있을 때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배를 여성으로 비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배는 남성만이 탄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여자를 배에 태우면 탈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이같은 말들은 이유 붙이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습성에 의해 생겨난 것이겠지만 배와 관련된 사람들은 알아두면 필요한 듯 싶다.

즉, 배는 생명의 원천인 바다를 달리는 것으로 여성의 몸과 같으며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배의 이름도 유행따라…

자스민, 무궁화, 베고니아, 군자란, 아카시아….

물론 꽃 이름이기도 하지만 배 이름이기도 하다.

배와 꽃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가 여성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배와 꽃은 잘 어울리는 말이다.

대한해운은 배 이름을 지을 때 이들 꽃 이름을 따서 짓고 있다.

거칠게만 느껴지는 선상생활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해 주자는 의도다.

여자가 꽃에 비유되듯이 배도 아름다운 꽃에 비유되는 것이다.

배 이름에 꽃 이름을 사용하는 회사는 우리나라의 대한해운 이외에 일본의 저팬라인이 유명하다.

배이름은 이들 꽃 이름 외에도 요즘에는 세계화 추세에 따라 외국지명을 따서 짓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진해운은 1호선은 정석호. 조중훈 그룹회장의 호를 딴 배이다.

한진은 이후 기항지를 중심으로 배 이름을 지어왔다.

예를 들면 한진함부르크 호, 한진뉴욕 호, 한진평택 호 등이 있다.

그러나 배가 늘다 보니 더 이상 기항지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진은 이에 따라 1996년 3월부터 시리즈로 인도한 5천TEU급 컨테이너선부터는 각국의 수도 이름을 따서 짓고 있다.

대표적인 것들이 한진런던 호, 한진베를린 호 등이다.

철저하게 배 이름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1호선부터 23호선까지 숫자를 넣은 배 이름을 지었다.

즉 현대 1호, 현대 2호 하는 식이다.

적어도 20여 년을 운항하는 배에 붙이는 이름치고는 너무 즉흥적이고 단순했다.

현대는 숫자이름으로 한동안 배 이름을 짓다가 이후에는 대체로 도전, 웅장, 대륙 등 중후장대한 그룹의 이미지를 담은 이름을 사용했다.

챌린저, 익스플로러, 파이어니어 등이 그 이름이다.

이후 선종별 특성에 맞는 이름들이 나왔다.

광탄선은 웅장함을 나타내는 자이언트(거인), 코스모스(우주), 아틀라스(대륙)둥으로 지었으며 자동차선은 레전드(전설), 프라이드(자부심) 등으로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은 환경 친화적인 이름을 따서 유토피아(낙원), 그린피아(녹색낙원) 등의 이름이 나타났다.

현대가 1996년 6월부터 시리즈로 인도한 5천5백TEU 컨테이너선 7척은 항로의 특성에 맞춰 이름을 지었다.

이 배들이 운항할 미주항로를 상징하는 인디펜던스(독립), 리버티(자유), 디스커버리(발견), 프리덤(자유) 등이 그 이름이다.

이같은 변화는 단순한 숫자로 이름을 짓던 때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SK 해운은 다른 회사들보다 회사 창립(1982년)이 늦었다.

따라서 후발주자로서 도전적인 이미지를 배 이름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1호선은 업계의 리더가 된다는 소망을 담아 유공리더로 2호선은 개척자의 도전정신을 담은 파이어니어로 지었다.

첫 번째 벌크선이 챌린저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회사가 안정되면서 선종별로 이름을 구분해 짓고 있다.

예를 들면 가스선은 G자, 석유제품 운반선에는 P자, 해상급유선은 벙커의 이니셜을 따 B자를 앞에 붙여 쓰고 있다.

부르기 좋은 이름이 듣기도 좋고 그래야 운도 따른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름짓기는 더욱 철학적인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미신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조심해서 손해볼 것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지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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