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제주대학교 풍력공학부 교수
▲김범석 제주대학교 풍력공학부 교수

[투데이에너지] 세계 각국은 팬데믹 이후의 경제회복을 위해 공격적인 그린뉴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을 두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국내 1차 에너지대비 재생에너지공급 비중은 3.8%이며 이는 덴마크(39.0%), 독일(16.4%), 영국(13.9%), 미국(8.5%), 일본(6.8%) 등 OECD 국가에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특히 풍력발전량 비중이 0.54%(3,150GWh)에 불과한 현 상황에서 속도 조절 얘기를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풍력발전은 2020년에만 93GW의 신규발전설비가 설치돼 누적설비용량이 743GW에 이르며 세계 전기수요량의 5.3%를 공급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약 154조원으로 추정되는 연평균 풍력발전 시장규모가 2027년까지 222조원으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용창출부문에서도 타 에너지원대비 풍력발전산업의 기대효과가 매우 크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단순히 효율적인 에너지믹스(energy mix)의 관점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재생에너지산업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공급과 같은 기후변화 대응적 가치 외에도 큰 변화가 예상되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 경제 질서 재편과정에서 핵심적인 도구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의 국내 신규 풍력발전설비 보급실적은 0.16GW(누적설비용량: 1.645GW)인데 반해 정부 R&D 투자액은 약 690억원에 이른다.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개발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약 6,300억원의 정부 R&D 투자가 일어났으나 외산 풍력터빈 보급률이 53.6%로 여전히 높은 편이고 국산 풍력터빈의 수출실적은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보수적인 풍력발전산업 특성으로 인해 충분한 사업실적을 보유한 기업들만 시장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평균 시장규모가 0.16GW에 불과한 내수시장만으로는 국내기업들의 적극적인 자체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래시장대응을 위한 정부 R&D 투자는 필요하지만 우리 기업이 충분한 사업실적을 확보할 수 있는 내수시장확대 중심의 정책지원에 더 큰 가중치를 두는 것이 세계시장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 육성에 효과적일 수 있다. 
현재까지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 규모가 14.6GW에 이르는 성과는 내수시장 확대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뤄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개방된 내수시장확대 정책은 오히려 산업육성 및 고용창출에 있어 기대만큼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우려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민간사업개발자들은 위험 관리와 수익성 향상에 유리한 외산 풍력터빈 도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시적으로라도 효과적인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지원을 통해 시장확대와 산업육성 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RE100과 PPA(power purchase agreement)제도는 민간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역균형발전에 참여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지역균형발전 요구도가 높은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제주는 해상풍력 개발 잠재량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상풍력집적화단지를 개발하고 공급자와 수요기업 간에 자유로운 전력거래가 가능한 완전한 PPA 시장이 열린다면 민간기업들의 자발적 공장 이전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RE100 산업단지 조성이 가능하다. 

이는 수없이 지적했던 계통연계 지연 문제 해소 외에도 그동안 한계에 부딪혀왔던 정부주도형 하향식 지역균형발전전략을 민간주도형 상향식 전략으로 전환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전통적으로 조선 강국이었던 스페인은 아시아 국가와 경쟁에서 뒤처진 유럽의 조선산업불황을 풍력발전산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지원정책을 통해 23GW의 풍력발전단지를 개발해 재생에너지 보급량을 크게 늘려왔고 동시에 세계적인 기업육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1년 신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보조금 제도 등의 재생에너지산업육성정책 철회를 단행했고 세계 정상에서 경쟁하던 악시오나, 가메사 등의 관련 기업 경쟁력이 급속히 추락해 약 14만명에 이르던 신재생에너지 종사자가 2014년에 7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스페인 내 풍력단지개발사업은 모두 중단됐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더 이상 스페인 시장에 투자하지 않았다. 정부의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신뢰성이 재생에너지 보급, 기업육성, 고용창출과 투자유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틀을 갖춰가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은 국내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면 우리는 세계 경제 질서재편의 물결을 해치고 나아가기 위한 녹색추진동력원을 영원히 상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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