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투데이에너지 박찬균 기자] 우리나라 가스시장은 1980년대 중반에 설립된 기본 틀을 근 40년 이상 동안 유지해 오고 있다. 이로 인해 가스산업의 효율화와 가스시장의 발전을 도모하는데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과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우리나라의 현재와 같은 가스시장의 구조는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등이 요구하는 국제 기준에도 어긋난다. 이러한 국·내외의 목소리를 반영해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천연가스시장을 민간에게 개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천연가스시장의 민간개방이 천연가스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이에 대한 문제점은 없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도시가스 가격구조 객관성 명분 가스위원회 설치

LNG 시장은 상품화(Commoditization)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장기계약에서 서서히 탈피해 다수의 공급자(생산자와 상업적 공급자)와 다수의 소비자가 제한적인 경쟁시장에서 거래를 늘리고 있으며 시장의 확대에 따른 Arbitration의 기회가 증가하는 동시에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가격 가변성도 증대하고 있다. 천연가스의 수요의 상당 부분이 발전용으로 기온(난방 수요), 풍속(재생에너지)과 태풍(인프라에 대한 위협)등의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다. 또한 국제지정학적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중립적 규제 기관의 필요성이 있다. 규제와 감독측면에서 정보의 비대칭으로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 일 수 밖에 없다. 가스공급업체의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을 관리 감독해 경제나 소비자에 불이익이 될 수 있는 독점적 관행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측면에서도 현행 도시가스 요금은 도입비용을 100% 회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수요예상보다 더 많은 LNG가 필요할 경우 시세보다 비싸게 구매하더라도 모든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

무조건적인 비용보전은 LNG 저가구매 유인을 하락시키고, 비싼 LNG 도입비용은 도시가스 요금으로 전가돼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도시가스 요금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LNG 도입 가격에 대한 적정성 검증과 함께 LNG도입 경쟁력 제고 방안도 수립돼야 한다.

공급의 안전과 신뢰성 강화측면에서는 중립적인 규제 기관이 공급망등의 안전 기준을 수립하고 가스 공급 인프라의 운영을 모니터링해 사고, 정전, 사이버 공격과 환경 위험을 방지할 필요성이 크다.

가스산업내 경쟁을 촉진해 가격인하, 혁신과 소비자 권익 신장은 물론, 공급망, 저장시설 등 중장기적인 인프라 건설 계획을 수립해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확장하는 등 인프라 개발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에 위한 가스산업 분야의 환경 규제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가스업계에서는 산업부라는 ‘시어머니’에 가스위원회라는 또 하나의 ‘시누이’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도시가스 ‘제3자 판매’ 명시한 자원안보특별법 통과시킨 국회

민간 에너지 대기업들에 ‘비축 의무’를 부과하는 대신 ‘제3자 판매’를 허용해 주는 법안이 국회 관련 상임위를 통과했다. 민간에 가스 도매 판매까지 열어주는 사실상 ‘가스 민영화’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민간에너지 대기업의 제3자 판매가 현실화할 경우 난방비 폭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자원안보특별법을 두고 가스 민영화 논란이 제기된 가장 큰 이유는 천연가스(LNG) 자가소비직수입자인 민간 에너지 대기업에 ‘제3자 판매’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데 있다. 기존엔 도시가스사업법 제10조의6 1항에 따라 자가소비직수입자는 수입한 천연가스를 국내의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없다. 천연가스의 수급 안정과 효율적인 처리나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가스도매사업자인 한국가스공사에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자원안보특별법 제33조(도시가스 처분에 관한 특례) 2항에선 산자부 장관이 민간 에너지 대기업들의 가스 처분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자원안보협의회 심의를 거쳐 대상물량과 기간을 정해 그 도시가스를 국내의 제3자에게 처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자가소비직수입자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가스도매사업자인 가스공사에 가스를 판매할 수 있었지만, 이번 특별법에선 소매 도시가스업체에도 판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수입-도매-소매’ 구조로 이뤄진 한국의 천연가스 사업은 이미 상당 부분 민영화가 진행된 상태다. 이중 수입은 ‘LNG 직도입’ 제도에 따라 민간에 부분적으로 허용됐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시나리오별 한전 전력 구매비용과 한국가스공사 연료 구매비용’ 자료에 따르면 천연가스 대량수요자의 연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국내 가스산업 내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목하에 1997년 직도입제도가 도입된 이후 2005년 1.5%에 불과하던 LNG 직수입 물량은 최근 국가총 도입물량의 20% 수준으로 늘었다.

소매는 이미 민영화돼 민간기업이 지역별로 독점한 상태다. 삼천리, 서울가스, 대성홀딩스 등의 민간업체가 한국가스공사로부터 도시가스를 공급받아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가스사업 중 유일하게 도매 영역만 한국가스공사가 전담해 민영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그동안 재벌기업(SK, GS, 포스코 등)을 중심으로 한 민간LNG산업협회는 직수입 제도 확대에 더해 천연가스 도매의 완전 민영화를 요구해 왔다.

만약 이번 자원안보특별법이 법제화돼 민간 에너지 대기업의 제3자 판매를 허용할 경우 수입-도매-소매를 아울러 전면적인 가스 민영화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이번 자원안보특별법에서 ‘제3자 판매’ 가능성을 열어둔 데 대해 “가스 민영화의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뭐든지 처음에는 예외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법안에 안전장치를 뒀다고 하지만 구멍이 하나둘 생기면 예외적인 게 아닌 게 되는 것”이라며 “하나씩 하나씩 민영화를 위한 단계를 밟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시민단체들은 “민간 기업은 가스를 반드시 공급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공급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구매력이 낮은 중소기업이나 가정용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 더 안 좋은 조건으로 가스를 공급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천연가스 배관망 운영 민간사업자 부담 줄이기 위해 ‘배관시설이용심의위원회’ 신설

정부는 현재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천연가스 배관망 운영을 개선, 민간사업자 이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관시설이용심의위원회’를 신설해 배관망 운영의 중립성을 높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매년 신규진입을 저해하거나 사업활동을 제약하는 정부 내 각종 규제를 발굴·개선해

오고 있으며 올해는 천연가스 등 국민생활과 기업활동 촉진과 관련된 분야에서 총 22건의 규제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이번 방안을 통해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하는 천연가스 배관망의 운영을 개선, 필수설비인 배관망에 대한 민간사업자(주로 LNG발전사)의 이용부담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발전용 가스의 공급비용 감소를 통해 발전단가의 인하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그러나 민간사업자들은 위원회 신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간사업자들은 자신들이 제안하고 정부가 수용해서 가스관을 관리하는 가스공사가 이를 반영해 규정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산업부가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가스공사가 자신들의 입장에서 ‘배관시설이용규정’을 개정한 것에서 보듯 위원회 구성이 민간보다는 가스공사가 현재와 같이 주도권을 갖고 배관망을 운영하겠다는 의중을 반영할 것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가스위원회 설치나 자원안보특별법 입법이 정부와 가스공사의 부정적 의견이 개입되면서 입법화가 지지부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배관시설이용심의위원회’도 겉으로는 ‘중립’을 표방하지만 무늬만 중립적인 위원회가 될 여지가 남아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